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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약관 읽기 귀찮아 엉겁결에 동의하고 지나간 수많은 개인정보동의서를 기억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체크하고 넘어가 버리는 '그 문화'가 안타깝다고 말하는 남자가 있다. 이정
약관 읽기 귀찮아 엉겁결에 동의하고 지나간 수많은 개인정보동의서를 기억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체크하고 넘어가 버리는 '그 문화'가 안타깝다고 말하는 남자가 있다. 이정륜 블록체인기술연구소 대표의 얘기다. 그는 유럽에서 불고 있는 개인정보 강화 방침에 맞춰 한국도 국제적 추세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데이터 활용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견지해 향후 도래할 시대를 준비하자는 얘기다. 오늘도 '탈중앙화 데이터 플랫폼'(기업이 아닌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인 개인이 정보를 통제하는 체계)을 구상 중인 그를 만나봤다.
코인 사행성에 묻힌 블록체인… 데이터 주권 강화에 큰 역할
이 대표는 비트코인 사행성 논란으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지는 분위기를 안타까워했다. 그는 가상화폐 말고도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기술연구소는 블록체인 플랫폼을 개발해서 필요한 곳에 제공하는 사업을 하는데, 궁극적으로 탈중앙화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는 게 목표다.
탈중앙화 데이터 플랫폼의 핵심은 데이터의 귀속권을 개인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불필요한 개인정보가 돌아다니지 않게 만들자는 얘기다. 예를 들어 대출이나 보험 권유 전화는 개인의 동의 없이 걸려온다. 이는 나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정보가 유출됐다는 뜻이다. 물건을 구매하려고 하면 주민번호까지 쳐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럴 때마다 기업은 고객의 정보를 저장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다. 과거엔 기업이 개인보다 신뢰받는 집단이었기 때문에 개인에게 귀속된 데이터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개인은 데이터를 스스로 관리할 능력이 없다고 봤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이를 구현시키는 핵심 기능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한번 블록체인에 올라온 기록은 변함이 없다. 이는 곧 무결성(불변성)을 획득한다는 뜻이다. 거래마다 내역이 계속 저장되면서 위·변조가 불가능해진다. 탈중앙화 신원증명(DID) 기술이 블록체인과 결합되면서 전자서명 기법이 도입돼 신뢰성(데이터의 진실성) 역시 보장해준다. 그동안 '데이터를 생성한 사람이 누구냐'는 문제가 따라다녔지만 DID를 통해 간접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된 셈이다.
이를 통해 탈중앙화 데이터 플랫폼이 자리잡으면 데이터 이동과 허용 권한을 개인에게 귀속시킬 수 있다. 어떤 데이터라도 개인의 허락 없이 유통될 수 없다. 데이터를 넘기는 개인이 원할 때만 기업이 이를 활용할 수 있다. 개인은 자신의 정보가 어디서 쓰이는지 알 수 있고 활용 기업에게 보상도 받을 수 있다.
유럽은 'GDPR' 확대 중… 국내 기업은 필요성 못 느껴
국내에선 이 같은 기술이 외면받고 있다. 외국과 비교해 개인정보 취급을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들끼리 데이터를 주고받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 대표는 국내 유력 기업들과 미팅을 하면서 해당 기술을 소개하면 고위 관계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전부터 별다른 잡음 없이 사업을 하고 있는데 굳이 앞장서 탈중앙화 데이터 플랫폼을 챙길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그는 “플랫폼 회사들에게 내 데이터를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있느냐”면서 “사람들 인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업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유럽은 다르다. 2018년 5월 GDPR(유럽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되면서 데이터 처리에 대한 엄격한 규율이 자리 잡았다. 정보주체에 데이터 통제권을 부여한다는 의미다. 어떤 산업군에서도 이를 우선시해야 한다. 유럽에선 기업이 함부로 개인들의 정보를 교환할 수 없다.
법적 문제 없이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선 블록체인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정보 교환에 탈이 없으므로 탈중앙화 데이터 플랫폼에 관심이 없지만 유럽은 정반대다. 때문에 이 대표는 현실적으로 유럽에서 해당 사업을 우선 추진하겠다고 한다. 다만 국내에서 여건이 마련되면 언제든지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규제 완화'에만 매몰돼선 안돼… 새로운 시선으로 산업 파이 '확대'
정부의 규제 완화 방침에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말도 전했다. 이 대표는 “개인정보에 대한 규제를 정립하는 움직임을 규제완화에 역행한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장의 변화를 규제로만 바라보지 말고 이를 기회로 삼아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그는 “이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 녹색성장은 우리 산업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오히려 해당 산업을 일찍 선점했다면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규제로 볼 것이 아니라 해당 산업의 장래성을 보고 앞장서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도전정신으로 해당 산업을 개척하면 결과적으로 산업 파이가 커지는 결과를 낳는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 대표는 현재 플랫폼 비즈니스가 사라진다면 진정한 의미의 '플랫폼 생태계'가 구현된다고 말한다. 탈중앙화 체계가 구축돼야 플랫폼 비즈니스가 가능한다는 것이다. 구글 같은 절대적인 사업자가 독점한 구조가 아니라 이들보다 작은 규모의 기업이나 개인들이 모여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구글이 현재 개인들의 정보를 통제하고 있지만 이제는 그것을 개인이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데이터 탈중앙화 시대에선 보안 유지는 블록체인이 충분히 할 수 있다”면서 “플랫폼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면 우리 회사의 비전은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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